한달살이를 하면서 유독 집착하는 1가지가 생겼다.
'시간에 맞춰나가서 노을을 보는 것'
한달살이를 하면서 최대한 계획적으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듯
가장 어려웠던 한가지가 그 점이였던 것 같다.
생각보다 난 매사에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다.
가볍게 카페를 간다고한다면
몇시에 나갈것인지, 카페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도착해서 해야할 일 리스트를 짜고 난 후에 출발한다.
이렇게나 계회적인 인간유형이
무계획으로 살아보자라고 다짐한 순간부터
어떻게 무계획으로 살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루틴을 어지럽혀나갔다.
일어날때 알람을 설정하지 않는것
눈뜨면 바로 일어나지 않는 것
불현듯 나가서 정자에 앉아 책을 읽는것(사실 이건 언제까지 책을 읽을 건지 계획을 세우고 나갔던 것 같다)
날이 좋으면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바퀴 돌고 오는 것
마감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삶을 산다는 건
생각보다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곳은 나주다.
이때도 몇몇 친구들이 난타를 배우러간 사이
숙소에 남아있던 사람들끼리 갑자기 떠났던 짧은 여행이다.
사실 정말 여행이라고 하기도 뭐했던 너무 짧은 시간이였지만
난 사실 전망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보다는
내 키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이것도 이 때 깨달았던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많은 것을 한번에 볼 수 있지만
자세히 보기 어렵다.
난 내가 원하는 한 부분을 오래 자세히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유독 비슷한 사진들이 많다.
그중 한가지가 내 눈높이에서 평행으로 바라보는 노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는 곳에서 바라보는
사실 별거 없는 사실이지만,
무언가 나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예쁜 것만 선물하고 싶은, 가장 좋은 기억만 남겨주고싶은
작은 소망이 섞인 사진을 찍어준다.
사진이란 참 재밌는 힘을 가졌다.
기억에서 잊고 지낸 것들도 사진을 보면 잠깐 사이에 그 당시 기억에 빠져든다.
그때의 향수를 느끼게 되고 불현든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주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새삼 느낀다.
나주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곳에 들리기를 꼭 추천해주고싶다.
'빛가람 호수 전망대' 이다.
도시와 자연이 적절하게 조화된 도시계획이 잘 이루어진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시골의 모든 장면장면은 한편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을 들게 해준다.
누군가의 들러리로 살다가 갑자기 내가 주인공인 소설속에 빠진듯한
처음엔 굉장히 어색하다.
출근시간이 되면 출근을 하러 지하철에 가서 지하철을 타고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하고 결과물을 내고
퇴근시간이 되면 쫓기듯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난 보상심리에 부지런히 움직여 밥을 해먹든 술을 마시든
12시까지 시간을 꽉꽉 채워 잠이든다.
같은 일상의 반복,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출근시간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엑스트라
그전까지 내 이름은 행인 235번 쯤이였으려나
시골에 떨어진 행인 235번은 등장인물이 별로 없는 또 다른 이야기속이다.
이곳에서는 난 더이상 엑스트라가 아니였다.
누군가가 지시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멈추고 싶으면 멈추면 되었고, 뒤로 걷고싶으면 뒤로 걸었다.
점심시간에 점심대신 자전거를 타고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발을 굴려 온몸이 벌겋게 다 타서 돌아온 하루도 있었다.
이런거다 내가 내 소설속에 쓰고싶었던건
정말 아쉬운건 내가 한달살이를 하고 있을때 글을 써놓지 않았던건,
그때의 기억이 온전하지 못한것이 너무 아쉽다.
이곳에서도 나를 필요로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특성상 기획물을 작업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꽤나 좋은 곳에 쓰여졌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작업물이 있다면, 둘레길 표지판이 였으려나.
사실 이건 내 프로젝트는 아니였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미니멀리스트 형님의 프로젝트였는데,
어쩌다 정말 어쩌다 참여하게되었다.(그냥 구경간다고 했던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표지판이 주는 상징적 의미들이 새롭다 느낀다.
정비되지 않는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을 깨닫게 해주는 공간의 개념 등 다양하다.
위 모든건 이미 설치되어있는 표지판을 본 그 길을 들어선 사람들의 개념이다.
이때 내가 느낀 표지판의 또 다른 깨달음은
이걸 설치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였을까.
표지판을 보는 사람들이 온전히 원하는 곳에 닿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는 일
내게 표지판을 만드는 건 그런 일이였다.
위 표지판은들은 월출산 둘레길인 '기찬묏길'에 설치 되어있다.
작업이 너무 늦게 끝난 날이지만, 왠지 들떠있었다.
왜였을까.
이곳에서 새롭게 생긴 루틴
노을이 질때 쯤 책을 가지고 나가는 일
사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난 주로 허황된 판타지 속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곳에선 책을 읽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였다.
매 순간이 너무 아름다웠음으로
괜히 그런 아름다운 장면속에서 내가 책을 읽고 있어야 될것만 같아서
그냥 소품처럼 들고 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한달살이 괜찮았냐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기 어색함은 없었는지, 시골이라는 특성상 편의시설에 대한 불편함은 없는지
생각보다 많은 것이 불편하고 어렵다.
그냥 현관문을 나서면 5분안에 모든 편의 시설이 있는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달살이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을 잊게 해줄만큼 내게 아름다운 기억이 쌓인다.
모든 불편함과 어려움은 뒤돌면 추억이 되어 남는다.
이때의 이야기로 평생 내가 중얼거릴 이야기가 생긴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달살이 시리즈는 계속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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