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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연주르의 여행

비워진 자리에 새로 채워지는 것들, 전라남도 영암 한달살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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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빈틈이 없는 것을 좋아한다.
여백을 보고 있으면 그 곳에 계속 무언가를 채울려고 했다.

아마 난 내 많은 부족함을 그렇게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어딘가의 가난함과 빈곤함을 자꾸만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고 했다.

그렇게 난 빈틈없이 꽉꽉 채워나갔고
이제는 그 안에 뭐가 담겨있는지도 몰랐다.

커리어도, 스케줄도, 머릿속도, 마음속도, 내 집 조차 말이다.
이상하고 엉망인 완벽주의자 증후군이였다.

이곳에서 난 덜어내는 연습을 했다.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더이상 꾸역꾸역 넣을 수 없을 만큼 꽉 차버린 지금

깊은 곳에서 썩어가고 있는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매일매일 난 한개씩 버리는 연습을 했다.

하루는 '무언가를 완벽하게 하지않으면 자책하는 마음'을
또 하루는 '누구에게나 잘보일려고 하는 마음'을
또 다른 하루는 '내가 준만큼 받지 않으면 실망하는 마음'을

하나씩 버려나갔다.

그렇게 비워낸 자리엔
또다른 무언가가 채워지고 있었다.

난 어쩔수 없이 채워야만 하는 사람인가보다 싶다.

그 자린엔 '나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쌓이고 있었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용기가,
자신이 없어도 시작 할 수 있는 용기가,
그 누구보다 내가 날 지지해주는 믿음이 생기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언제나 불안하고 두렵다.
하지만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었기에
더 나은 다음을 만들려고 한다.

난 내가 걷던 포장이 잘된 길을 벗어났기에
비워낼 수 있었고, 바뀔 수 있었고,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

나에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지냈던 한달반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내 밋밋하고 지루했던 흑백의 시간속에 알록달록한 활력을 쏟아냈던 것이다.

아직은 잘 모른다.
내가 어딜 향해 가고 있는지, 세상에 정답은 없다지만 혹시나 내가 가는 길이 오답은 아닌지

그럼에도 내 눈은 어느때보다 빛나고 발걸음 하나하나에 힘이 있다.

한달살기가 끝나기 얼마남지 않은 시간

지겹도록 이곳을 담아내었다.
나에게 또다른 내일을 선물한 따뜻하고 포근한 이곳을

가장 뾰족하고 까맣던 시간을 말없이 감싸준 곳이라고 생각한다.

무더운 여름에도 시리고 차갑던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따듯한 미풍을 불어넣어준 곳

그게 나의 영암이였다.





여름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날
우리들은 이상하게 둥둥 뜨고 설레여했다.

마치 아주 어린 시절 쏟아지는 장대비를 보며 큰 샤워장이 생긴 기분에 뛰쳐 나갔던 그날처럼 말이다.

신경 쓸 것 없이
그때그때의 기분에 행동하던 순박했던 시절

우리는 다시 그때로 돌아갔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린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정자로 달려가 막걸리를 마시며 기뻐하는 어른이가 됬다는 것 뿐일까

여름의 시원함에 살짝의 술을 더했고 별거 아닌 이야기들에 웃던 그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어린 기억이 되어버렸다.




비는 머지 않아 그쳤고 우리에게
낮과는 다른 저녁 노을을 선물했다.

그리고 우리는 술기운에 다른 술상을 차리고
우리들의 낙원속의 작은 파티를 열었다.

어쩌면 내가 비워낸 자리에 조금씩 가득가득 들어찬건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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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은 것들이 변해 갈수록
내가 보는 시야도 풍경도 변해갔다.

산도 달도 하늘도 그전에 보던 것과는 다른 것이였다.
점점 다른 영감들로 다가왔다.

내가 걷는 길들마다 묻어있던 향취는 조금씩 내게 스며들어 내게 다른 향기가 풍기게 만들었다.

매케한 매연냄새를 지워갔고 날이선 기운을 몰아내었다.


산들의 푸르른 향기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포근한 온도를
붉은 노을의 뜨거운 위로를
밝게 비추는 달의 설레임을
속삭이는 새들의 노래를
귀를 간지럽히는 풀벌레의 소리를

그렇게 영암의 향기가 비워진 곳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점점 끝이 보이는 것 같네요.
앞으로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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